캐나다 총선에서 중도-진보 진영의 자유당(Liberal)이 마크 카니 당대표 지휘아래 재집권했다.
총 343석의 하원 중 168석을 차지해, 과반수(172석)를 넘지 못한 자유당의 소수 집권이다. 그러나 올초 지지율대로라면 집권당이 됐을 보수당은, 총선 전보다 23석을 늘린 144석을 차지했지만, 집권 못했다.
여기에 한국 언론들은 트럼프 반감을 주로 거론하는데 조금 수박 겉핡기의 느낌이 있다. 외국 정치 상황에 의해 정권이 결정됐다는 분석인데, 100% 맞다고 하긴 어렵다. 캐나다 정치인들의 사정과 노력도 좀 알고는 있으면 좋겠다.
저스틴 트뤼도 전총리는 이상주의다. 손해 감수하며 이상을 밀어붙이나, 그 덕분에 정책 실효성이나 실리를 종종 까먹었다. 이런 이상주의자 만큼 비판하기 쉬운 상대도 없다. 보수당은 트뤼도 비판 스텐스를 오래 유지하며 타성에 젖었는지 현실주의 관료 타입인 마크 카니에 맞서서 같은 전술로 대했다. 카니는 캐나다와 영국 중앙은행 총재 등을 거치면서 흠집내기 어려운 인상을 갖고 있는데, 보수당은 '한결같은 자유당'이라는 한결같은 비판을 할 뿐 카니 공략에 더 효과적인 무기로 바꿔잡지 못했다.
유권자는 여당에는 정책을, 야당에는 비판/견제를 기대한다. 보수당은 야당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보수당 정책은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총선 말기에나 나온 공약은 답변 속도부터 너무 느렸다. 그 사이 카니는 감세 정책등 오히려 보수파가 내놓을 법한 공약을 발빠르게 내놓았고, 트뤼도 전총리 시절 정치적 올바름의 상징적 인물인 환경주의자 스티븐 길보를 내각에서 배제하는 등 트뤼도와 다르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했다. 트뤼도 정권 심판론은 새로운 인물 앞에서 힘을 잃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의 난타에 지친 캐나다인에게 카니는 "미국이 못한다면, 우리가 미국 대신 하겠다"는 목표를 꺼냈다.
미국을 캐나다가 대립해 밀어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캐나다는 그간 소위 미들 파워(Middle power)정책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미들 파워의 키워드는 자유무역, 다자주의, 평화유지군, 중재-틈새외교, 도덕적 지도력, 소프트파워, 동맹 연대다. 카니는 자유무역이나 평화유지군, 중재-틈새외교 등에서 미국이 뒤로 물러나면 캐나다는 앞으로 나아가 채우겠다는 주장을 펼쳤다.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일단 지도자의 격을 캐나다 유권자에게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폴리에브와 보수당은 미국 대응 질문에 대해, 캐나다인 유권자에게는 당연한 수준인, 국체유지 수준의 답변만 내놓았다. 이건 그토록 콩가루가 되도록 깠던 트뤼도 전총리와 판박이 답변 밖에 안됐다.
그리고 이건 보너스:
캐나다 보수당은 미국 공화당과, 자유당은 민주당과 비슷한 성격을 띄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자유당은 친미+환경우선 이라면 보수당은 친미+산업우선의 차이가 있다. 이 가운데 자유당 친중론이 한국 사람 사이에 퍼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가 보인다. 현 시점에 자유당 친중론을 얘기하는 사람은 100% 캐나다 정치/외교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한국 정치 상황을 캐나다에 투사해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정말 지능 문제다. 한국과 캐나다는 다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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