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정치가 후진 나라들은 소위 '국뽕'에 취한다.
일당독재 국가거나, 민주주의 형태를 취한 막부국가는 그 후진 정치 체제 자체로 인해 내부의 불만이 끓어오르기 마련이다.
주로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억압하면서 불만의 압력은 점점 쌓이게 된다.
고대로부터 이 불만의 압력을 빼는 데는 '빵과 서커스'가 주효했지만, 이 효과에도 한계는 있다.
특히 인간이 대게 고단한 삶을 살 수 있게하는, '희망'이라는 당근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 닫힌 사회, 또는 불평등을 강하게 느낄 때는 빵과 서커스로도 불만을 누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요즘 독재자들은 빵과 서커스가 잘 통하지 않는 단계를 넘어선 지점에서 미디어를 동원한 '국뽕'을 사용하는 게 보인다.
중국은 툭하면 한국을 꾸짖으려 든다.
매우 자존감 강한 민주주의 국가에 대해 일당 독재체재 국가가 부담감을 드러내는 거로 나는 본다.
중국은 요즘 일당 독재에 한 발자국 더 자빠져서는, 한 사람의 지도력을 찬양하는 상당히 유치한 체재를 만들고 있다.
그런 자신들의 유치 찬란함이 옆에 세련된 제도와 수준을 갖춘 나라와 비교돼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러니,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는 메시지를 한국 국민보다는 중국 인민에게 보여주려고, 자신들보다 못하다는 이런 저런 헛소리를 한다.
예컨대 한국보고 2020년 2월에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을 잘하라는 건, 그건 한국을 무시했다기 보다는, 중국 정부는 한국보다 더 잘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싶은 중국 국내용 표현이다.
거기에 한국인은 그들은 진지하니 비웃지는 말고, 그냥 썩소 한 번 지어주면 될 듯 싶다.
진실이나 객관성을 외면한 그런 프로파간다 발언은 많이 써먹을 수록, 정권은 강화될지 몰라도 자국의 국력을 좀먹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 기준을 가진 나라는, 겨우 그 따위 기준을 유지하려고 자국민의 생명을 갉아먹기 마련이다.
한국 옆에 민주주의 스타일의 21세기형 막부국가도 자신들의 불안감을 최근 몇 년간 주로 '혐한'으로 표시하고 있다.
과거 '떼쓰는 동생' 쯤으로 여긴 한국이 사회적 의식면에서 자신들을 추월하는 조짐에, 이미 문화적 영향력에서는 일정 부분 앞지르고 있다.
예컨대 아이돌 시스템을 만든 건 일본이지만, 그 대명사는 BTS. 아시아 영화라는 지표는 일본 영화가 먼저 찍었지만, 최근 세계적 인정을 받는 건 봉준호 감독이다.
여기에 대한 대중적인 질투심과 함께, 역시 이 나라도 퇴행하는 제도에 기생하는 정치꾼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려고 '국뽕' 맛을 많이 사용하는 듯 싶다.
그 막부국가의 대표적인 퇴행의 대표적 상징은 후쿠시마 원전 대응이며, 이 상징성 있는 사건을 계속 지적하는 한국에 대해 아베 신조씨는 상당히 미울 거다,
다만 난 일본이나 중국을 비웃자는 또 다른 국뽕 한 사발을 빚으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두 나라다 존중받고 어느 면에서는 존경 받을 부분도 있는, 과거로부터 그 성취가 대단한 나라다.
삼국이 서로의 장점으로 연결돼 손을 잡을 때, 인류사적 성취도 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통치 체계는, 지배 계층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고 발전을 억제 하면서 위기 지점 또는 안갯 속으로 국가를 끌고 들어가고 있다.
두 나라의 더 큰 문제는 위기 그 자체에 직면해 싸우는 용기는 없고, 그 나라의 '기생충'이든 무엇이든 간에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자격지심으로 옆 나라를 깎아 내려 겨우 위에 서보겠다고 용쓰는 지점에 있다.
개인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국뽕'은 상당히 그 유치한 면면의 바닥이 어디일까를 궁금해하며, 즐기면서 보고 있다. 최근에 '와~ 저렇게 유치할 수가'라는 심상으로 감상한 게 중국 춘절 때 아나운서들의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구호 외침이다.
국뽕은 마약이다. 하는 나라나 듣는 국민이 기분 좋을지 몰라도, 중독되면 거기에 사회문화적 또는 창의력에 가야할 에너지를 낭비한다.
그럼 한국 또한 두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국뽕 한 사발을 함께 들이켜야 할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국의 단기간 성취는 대단하지만, 같은 국뽕을 들이키면서 남들 망하는 경로를 그대로 답습할 필요 없다.
게다가 한국은 여전히 넘어야할 산이 아직은 많다. 이 점은 나중에 차차 생각나면 써보자.
이 가운데, 21세기에 이미 시작된 조류로, 다원적 가치관의 사회는 국가라는 통치 단위를 아무래도 여러모로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게 보인다.
20세기만 해도 '국가'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팍팍 뭉치고는 했는데, 이제는 '국가'란 결국 하나의 도구, 심지어는 선택할 수 있는 조건 밖에는 안된다는 걸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화의 흐름에서 세상을 보면, 국뽕은 실로 많이 유치해보인다. -권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