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널드 초대 총리 배제 운동, “국부더라도 인종차별은 못 봐준다”

존 A. 맥도널드
1865년의 존 A. 맥도널드 총리. 사진=캐나다 국립 도서관

과거의 위인이 현대의 기준으로 잘못된 일을 했다면, 위인에서 배제해야 할까?

리사 헬프스(Lisa Helps) 빅토리아 시장의 답변은 “그렇다”이다. 헬프스 시장과 시의원은 9일 시청 앞 존 A. 맥도널드 캐나다 초대 총리의 동상 제거에 관한 결의안을 다룬다. 맥도널드 총리 동상을 제거하려는 이유는 원주민을 폭압적으로 대한 정치를 주도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 전 총리를 문제 삼는 건 빅토리아 시의회뿐만이 아니다. 원주민 커뮤니티에서 이미 그에 대한 비판이 상당하다. 대표적인 잘못은 두 가지다. 원주민과 토지 협상을 맺고서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토지수탈과 착취가 이뤄졌다. 둘째 원주민 문화 말살 정책인 원주민 기숙학교 및 아동 강제 수용 정책을 시작한 게 맥도널드 총리다.

이미 온타리오 교사노조는 지난해 맥도널드 총리가 사실상의 ‘말살(genocide)’을 주도했다며, 그의 이름을 딴 학교 이름을 쓰지 말자고 결의했다. 캐나다 국내 역사학자 일부도 19세기 당대 기준으로 인종차별이 사회에 만연했던 건 사실이나, 맥도널드는 차별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인물이란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중국인에 대해서도 투표권을 주지 않는 법을 만들기 위해 차별 발언을 했다. “(중국인은) 영국적인 본성이나 영국적인 감각 또는 욕구가 없다.” (“He has no British instincts or British feelings or aspirations.”) 또한 “아리안 민족은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계와 완전히 융합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인종을 넘는 건, 마치 개와 여우의 교배 같아서 성공할 수 없다. 일어날 수도,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현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발언을 1885년에 했다.

맥도널드는 1815년 1월 11일 영국에서 출생해 1891년 6월 6일 사망했다. 1820년 영국에서 캐나다로 부모를 따라 이주했다. 변호사로 시작해, 1844년 보수당 소속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867년부터 1873년까지 캐나다 초대 총리로 활동했다. 1873년 퍼시픽 레일웨이(태평양 철도) 건설 사업을 펼치면서, 철도 회사로부터 정치자금을 빼돌린 소위 ‘퍼시픽 스캔들(Pacific Scandal)’로 실각했다. 1878년 다시 총리로 되돌아왔고, 1891년 사망할 때까지 모두 여섯 차례 총선에서 승리해 19년간 캐나다 총리 자리에 있었다. | JoyVancouver 🍁 | 권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