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5일 (목요일)

캐나다 진보가 추구하는 보편적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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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정계에서, 특히 진보 진영에서 추진하려는 방안 중에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약자 UBI)’이 있다. 다른 명칭으로는 기초소득 보장제(Basic Income Guarantee)라고도 한다.

국가가 일정 기준 소득까지 소득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단 고용보험(EI) 같은 실업 수당과는 달리 실업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소득을 지원하며, 일하면 조금 더 받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주로 신민주당(NDP)이 미는 정책이며, 집권 자유당(LPC) 일부에서도, 추진하지 않으나, 검토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새로운 안은 아니다. 캐나다에는 이미 두 차례 실험적으로 소수에게 적용해본 사례가 있다.

1974년 매니토바 도핀의 실험

캐나다 연방정부는 1974년부터 1979년에 매니토바의 도핀이란 곳에서 인구 1만 명을 대상으로 처음 ‘민컴(Mincome)이란 이름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시험했지만, 정착에는 실패했다.

이유는 경제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70년대의 가파른 물가 상승률과 예상보다 높은 실업률은 별다른 근거 없이 책정된 C$1700만 민컴 예산을 빠르게 잠식해버렸다. 정책 자체가 유야무야 됐다. 데이터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정부 문서 저장고에 잠들어있었다.

민컴의 장점 재발견

결국 2011년 매니토바대학교 보건경제학 교수인 에벌린 포제 보건 경제학과 교수가 민컴 자료를 발견해 몇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첫째, 도핀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병원 입원 환자수가 적었다. 위험한 일을 기피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70년대 캐나다에도 많았던 산업재해를 줄이는 효과를 냈다. 둘째, 학교 졸업률이 높았다. 일하기 위해 학교를 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일을 계속했고, 그만두는 사람은 없었다. 소위 ‘공돈’으로 마약과 음주가 늘어날 거란 예측은 빗나갔다. 대부분 사람들은 예상보다 게으르지 않았다.

민컴을 받은 사람 중 1%가 직장을 그만뒀는데, 이유는 자녀 양육이었다. 근무 시간을 줄인 사람은 10% 이하였다. 근무 시간을 줄인 사람들은 학교를 다시 다니거나, 혹은 더 나은 임금을 찾아 구직활동을 했다.
포제 교수의 분석은 캐나다 국내 진보 진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2017년 온타리오의 4,000명 실험

이어 2017년 온타리오 자유당 주정부가 예산 C$1억5,000만을 배정해 4,000명을 대상으로 보편적 기본소득 실험에 착수했다.

기본적으로 소득이 있는 이들에게, 개인은 연 최대 C$1만6,989를, 부부는 최대 C$2만4,027을 수당으로 주는 방식이었다. 소득이 있으면 소득에 50%를 곱해 수당 지급액에서 제하는 방식이었다. 즉 일을 한다면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해당 정책은 2018년 8월, 시작 10개월 만에 진보 보수당(PC) 주정부로 교체 후 중단됐다.

중단되기는 했지만, 일부 효과는 민컴과 유사했다. 사람들은 일을 그만두지 않았고, 소득 일부를 지원받았다. 상당수가 추가 교육을 받는데 활용했다. 그러나 10개월의 시험 결과는 정권교체와 함께 제대로 데이터화하지 않아, 객관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유사한 정책으로 실험

비록 보편적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즉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규모로 제도적인 실험이 최근 있었다.

코로나19 경제난 대응으로 트루도 총리가 추진한 캐나다 비상 대응 혜택(CERB)과 캐나다 회복 혜택(Canada Recovery Benefit 약자 CRB) 은 수혜 기간 동안 소액의 소득을 허용했고, 그 위에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물론 CERB나 CRB는 제도적 형태는 비슷하지만, 보편적 기본 소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진보계 야당인 신민주당(NDP)은 이번에 보편적 기본 소득으로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중도-진보계인 집권 자유당(LPC)은 아직 거기까지 나아간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반면에 캐나다 보수 일부는 이런 제도 실험 자체를 소위 ‘그레이트 리셋’과 연계해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과 공산주의의 차이

보편적 기본소득은 공산주의 제도는 아니다.

공산주의는 국가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분배한다. 이 생산 수단에는 토지, 자원, 자본뿐만 아니라 인간도 포함된다. 공산국가는 생산 수단이 국가가 혹은 독재정당이나 독재자가 정한 목적대로 사용하도록 감시하고, 처벌한다.

결과적으로 시스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의 밖을 보지 못하게 막는 꽉 막힌 형태에, 인간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공산주의가 20세기에 들어섰다가 실패한 주원인이 됐다.

반면에 보편적 기본소득은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를 인정한다. 즉 자유-자본주의는 유지한다. 개인은 주식이나 집, 차를 보유할 수 있다.

다만 보편적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의 아이디어인 점은 분명하다.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적 이익을 우선해, 보편적 기본소득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가장 큰 과제는 재원 마련

보편적 기본소득을 추진하려면 당연히 재원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진보와 보수가 싸우는 전선이 형성돼 있다.

캐나다의 진보 진영은 재원 마련에 대해 부유세로 요약되는 고소득자 고세율 제도와 다른 복지 제도를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통합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 또한 민컴의 사례처럼 줄어든 의료 이용에 따른 잉여 예산을 합산해 보편적 기본소득 예산으로 돌리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보편적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생활의 여유를 갖고 소비를 늘리는데, 이는 세수 증가로 연결된다는 논리도 있다.

다만 소비 증가는 양날의 검이다. 수요와 공급법칙에 따라 소비가 늘면 자연스럽게 물가 상승률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면 첫 해 지원한 예컨대 월 C$1,000은, 이듬해에는 같은 지원효과를 내지 못한다. 물가 상승으로 더 많은 금액을 지원해야 한다.

여기서 보수와 진보의 갈림길이 있다. 진보는 그러한 물가 상승률을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부동산 시장에 개입해 빈집세를 부과하는 등 제어가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에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미덕인 보수에게는 이러한 통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보수계는 진보진영의 보편적 기본소득 주장에 대해, 실험적인 사안에 막대한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며 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프레이저 연구소에 따르면 18~64세 캐나다인에게 과세소득으로 연간 C$2만4,000을 지원할 경우, 연간 비용은 C$4,645억이 든다. 만약, 연소득 C$7만7,580까지만 지원한다고 해도, 예산은 C$4,472억이, 연소득 C$5만까지 지원하면 C$3,814억이 든다. 별도로 65세 이상에게도 연간 C$2만4,000을 지원하면 추가로 C$1,319억이 소요된다.

2019-20 캐나다 연방정부 예산은 총 C$2,521억으로, 그나마 이 액수도 사상 최대의 적자를 각오하고 코로나19 경제난 해소를 위해 투입한 액수다.

진보는 부유세와 기존 복지∙보건 예산의 통합 및 향후 세수 증대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보수는 도입 자체가 무리한 대규모 사회 실험으로 보고 있다.

연방 아니면 주정부?

이 가운데, 보편적 기본소득이 캐나다 연방 단위에서 시행이 어렵다면, 주정부가 먼저 시행할 가능성도 있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PEI) 주정부가 또 다른 시험 정책으로 보편적 기본소득 안을 추진 중이다.

주정부는 PEI주민 5만명에게 연간 C$1만8,260을 지원하는 기초소득 보장제 도입을 추진중이다. 다만 문제는 예산인데, 현재 어니 허드슨 PEI 사회개발 및 주택부 장관은 연방정주에 연 C$2억7,000만 예산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저스틴 트루도 캐나다 총리는 지원 거부의사를 밝히고 있다, 반면에 잭미트 싱 신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연말, 만약에 향후 신민주당이 집권한다면,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PEI의 실험은 다른 진보 주정부가 들어선 주들에게는 큰 관심사다.

세인 심슨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 사회개발 및 빈곤감소부 장관 역시 2018년부터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 연구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BC주 연구 결과를 보면, 만약 1인당 C$1만8,000을 BC주민에게 지급한다면, 비용은 약 C$520억이 소요된다. BC주정부의 전체 예산이 C$600억 규모여서, 만약 시행하겠다면 예산을 ‘올인’하는 수준의 특단의 결정이 필요할 전망이다. | JoyVancouver © | 권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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