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상식백과30

퀘벡 분할이 민주주의 제도 시작점이 됐다

아메리카 혁명전쟁 이전 퀘벡에는 가톨릭 불어권이 다수였다. 그러나 전쟁을 치르며, 영국 출정기지가 된 퀘벡 일부 지역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미국에서 영국에 충성한 왕당파, 로열리스트(Royalist)가 들어오면서, 이들이 불어권 가톨릭과 분할을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로열리스트는 앞서 1784년에 뉴브런즈윅 안에 있던, 자신들이 개척한 케이프 브래튼을 분할해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성과를 냈다. 이들은 퀘벡 분할도 영국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분할을 요구한 게 아니고, 분할을 통해 이미 개발된 지역을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분할을 통해 이들이 노린 건 권력이지만, 긍정적인 면을 본다면 캐나다의 민주주의 제도가 전 지역에 자리 잡기 계기가 됐다.

최초의 여성 참정권이 주어진 로워캐나다(퀘벡)

영국의회는 1791년 캐나다 최초의 헌법을 마련해, 퀘벡을 오타와강을 경계로 업퍼 캐나다(Upper Canada)와 로워 캐나다(Lower Canada)로 분할하며 제도를 정비한다. 세인트로렌스강 기준 상류 지역은 업퍼로, 하류는 로워로 칭했다.  업퍼 캐나다는 영어권으로 오늘날 온타리오, 로워는 불어권으로 오늘날 퀘벡이다.

업퍼캐나다와 로워캐나다
자료원=WorldAtlas.com

최초 헌법은 캐나다와 퀘벡을 혼용하던 지명 중에 ‘캐나다’라는 호칭을 최초로 공식화했다. 다만 업퍼∙로워 캐나다와 북미 대서양 연안 식민지를 묶어서 부르는 호칭은 영국령 북아메리카(British North America)로 했다. 또한, 선거권에 대해 정의했다. 왕실에 충성하는 21세 이상 일정 토지를 소유했거나, 일정 수준 이상 집세를 내는 전과 없는 사람이 투표할 수 있었다. 보통선거를 보장했지만, 나이와 거주기간만 기준으로 하는 현재보다 제약이 많았다.

다만, 시대상으로 볼 때 파격적으로 부부 사이 부인의 재산권을 인정한 프랑스 민법을 택한 로워 캐나다(퀘벡)에서는 여성도 투표할 수 있었다. 반면에 영국 관습법에 따라 부권제(父權制, patriarchy)인, 전 재산이 남성에게 종속하는, 업퍼 캐나다에서는 여성 투표권이 없었다.

투표로 대의정부가 세워진 건 아니었다. 선거로 뽑힌 주의원은 입법권만 있었고, 행정권은 총독이 임명한 행정카운슬(Executive Council)이 가졌다. 총독은 또한 상원 역할을 한 입법카운슬(Legislative Council) 의원 임명권을 가졌다. 결과적으로 총독권한이 막강해 완전한 민주화로 보기는 어렵다. 이 부분이 미국과 대조돼 일부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후일 업퍼와 로워 모두 개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분쟁의 씨앗이된 지역 분할

또한 업퍼와 로워캐나다 지역 분할은 영어권이 원하는 그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대 최고 거상인 몬트리올 영어권 상인 불만이 컸다. 원래 프랑스계에 적대적이던 이로쿼이족 땅이던 몬트리올은, 누벨프랑스 당시 원주민을 내쫓고 대유럽 모피 수출 기지로 개발됐다.

이후 영국군이 퀘벡을 점령하면서, 은행 운영권을 가진 영국인이 들어왔다. 이들은 지역 금권을 장악 후, 상권을 접수했고, 자연 수로인 세인트로렌스 강을 인공 수로로 개발하는데 열을 올렸다. 세인트로렌스강은 캐나다 내륙 상품을 모아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 길을  차지하면, 당시 온 나라의 상권을 가질 수 있었다.

몬트리올은 이 수로의 종점이자 시작점이었다. 몬트리올 영어권은 권력과 재력을 바탕으로 불어를 금지하고, 영어권으로 재편을 추진하는 중에 분할을 맞이했다. 이들은 몬트리올이 로워캐나다에 속하는 데 큰 불만을 가졌다. 이 때문에 1793년 퀘벡시티에서 소집한 첫 로워캐나다 주의회에서는 영어와 불어 공용 문제로 격론이 펼쳐졌다. 이러한 영어권의 욕심에 불어권도 불안과 불만을 가졌다. | JoyVancouver 🍁  | 권민수

댓글 남기기

의견을 남겨주세요!
여기에 이름을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