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가 다시 전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3위에 올랐다.
이 발표하는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서 밴쿠버는 계속 3위 자리를 지키고있다. 분석 대상 140개 도시 중 1위는 호주 멜번, 2위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다.
밴쿠버 다음으로는 토론토가 4위, 캘거리가 5위에 각각 올랐다.
EIU는 5개 분야를 놓고, 평가 반영 비율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지수를 매겼다. 평가 분야는 ▲안전성(비율 25%) ▲보건(20%) ▲문화와 환경(25%) ▲교육(10%) ▲사회시설(20%)이다.
이 5과목 기준으로만 보면 밴쿠버는 공부 잘하는 학생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경제라는 한 과목을 더하면, 밴쿠버는 캐나다 국내에서도 평범한 학생이 된다.
캐나다 국내 매체인 머니센스지가 매년 발표하는 캐나다 국내 살기좋은 곳 보고서는 주거 시장 접근성, 세율, 소득 수준을 포함하고 있다. 즉 EIU가 반영하지 않은 분야인 경제가 머니센스지 순위에는 들어가 있다. 이 결과 2017년도 머니센스지 순위를 보면 메트로밴쿠버 중에 노스밴쿠버군이 20위로 가장 높다. 그 다음이 포트무디(22위)다. 1위는 캐나다 수도 오타와다.
물론 밴쿠버는 살기 좋은 도시는 분명하지만, 평가 기준에 따라 순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독자도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다시 EIU 평가 기준에서 어떤 점을 놓치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자.
EIU은 안전성을 다시 5개 요소로 세분화해 평가했다. 소액범죄 발생률, 폭력범죄 발생률, 테러위협, 군사분쟁 위협, 폭동∙분규 위협이다. 밴쿠버는 다른 1∙2위 도시와 함께 지수 100 중 95 평가를 받았다.
좀 더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해 미국무부 산하 해외안보자문위원회(OSAC)가 올해 4월 공개한 2017년도 밴쿠버 안전 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서 역시 밴쿠버에서 폭력범죄, 테러, 군사 분쟁이나 폭동 발생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EIU 안전성 평가 요소 5가지 중 4가지에서 밴쿠버는 자타 공인 우등생인 셈이다.
단 모든 치안 문제에 밴쿠버가 면죄부를 받은 건 아니다. OSAC는 “캐나다 국내 950개 조직폭력단이 있다”며 “일부는 밴쿠버가 U$ 70억 규모인 서부캐나다 마약거래 중심지로 보고 있다”고 기술했다. 물론 조폭은 마약과 관련없는 일반인을 해하지는 않는다는 불문율은 있다. OSAC는 밴쿠버가 도시 규모에 비해 살인 등 강력 사건 발생률은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마약은 BC주에서 만악의 근원이다. 조폭 운영 자금줄이자, 중독자는 마약 값을 마련하려고 닥치는 대로 절도 행각을 벌인다. BC주에서 사진은 압수한 마약류. 사진=BC주정부
밴쿠버에 또 다른 치안 문제는 좀도둑이다. 메트로 밴쿠버에서 밴쿠버시만 관할하는 밴쿠버경찰 통계만 봐도, 올해들어 7월까지 피해액 C$ 5,000미만 절도만 8154건, 차량 내 절도만 7,592건이 신고됐다. 두 가지 범죄는 밴쿠버에서 가장 흔한 유형으로, 자동차나 자전거, 스마트폰, 랩탑, 카메라 등 관리를 특히 주의해야 한다.
EIU는 보건을 민영∙공공 보건을 각각 이용 가능 여부와 수준으로 평가하고, 여기에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약 종류, 평균 여명 등 일반적인 보건지수를 더해 6가지 요소로 세분화해 평가했다. 밴쿠버 지수는 100. 즉 만점이다.
평가 기준 자체가 밴쿠버를 만점으로 만들어준 부분이 있다. 캐나다 다른 도시처럼 밴쿠버도 대부분 생명과 관계된 의료는 공공 부문이, 안과∙치과∙일부 재활치료나 심리 상담은 민간 부분에서 다루고 있다. 즉 의료에 관한 전반적인 부분은 공립∙민간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약도 민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만큼 소비자 요구에 대부분 맞춰 공급한다. 평균 여명 등 보건 지표를 보면 캐나다는 다른 나라보다 좋은 수치를 보인다.
그러나, 이 평가에는 두 가지 주요 현안이 빠져있다.
하나는 의료 예산 급증이다. 의료 예산이 급증하면, 결과적으로 주민은 더 많은 세부담을 떠안게된다.
소득이 없거나 적은 초기 이민자나,노년층은 캐나다 의료가 ‘무료’ 라고 오해하지만, 각 주정부 전체 예산 중 40~50%는 의료 예산이다.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 감사원이 올해 3월 발표한 의료 예산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7년도 주정부 예산 중 41%인 C$192억이 의료에 투입된다. 주민 1인당 C$4,050으로, 캐나다 평균 1인당 C$4,095보다 적은 액수다. 이 액수는 인구 고령화에 따라 계속 늘고 있다. 2012/13회계연도와 비교하면 BC주 일반 보건 예산은 14%, 집중치료시설은 11%, 양로원은 5% 지출이 늘었다. 감사원은 “보건 비용은 의료 서비스 제공과 안정적인 재무 상황을 유지하는 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짜 점심은 없는 셈이다.
참고: 캐나다 가구당 의료비 부담 C$1만2000, 프레이저연구소
공공의료는 결국 무료가 아니다. 인구고령화로 인해 분담 비용은 세금 형태로 보이지 않게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2015년 도입한 구급차. 올해 다시 구급차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BC주 보건부
또 다른 하나는 개인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진료 및 수술 대기 기간이다. 예컨대 버나비 종합병원 고관절 수술 대기기간을 보면 대기 환자 50%가 수술받기까지 10주, 90%가 수술받기까지 15.1주가 걸린다. BC주에서 가장 고관절 수술 횟수가 많은 버나비 병원 대기 기간은 BC주 평균에 비해 빠른 편에 속한다. BC주 평균은 50%에 18.4주, 90%에 46.2주가 걸린다.
이 통계를 환자 입장에서 보면, 가정의 진단을 거쳐 몇 주 또는 몇 달을 기다려 전문의를 본 후, 수술 일정을 잡고, 적어도 10주~ 15주를 더 기달려야 한다. 수술비용은 들지 않기 때문에 원화 600만원 상당 고관절 수술비를 아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기간은 고통으로 감당해야 한다.
암 같은 병은 돈보다 시간을 다투는 질병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한인이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건강상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배경이 바로 이 대기 기간이다. 또 이 문제는 진보∙보수 정치권이 모두 해결사를 자임하고 있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캐나다 특유 문제이기도 하다. 단 '모든 수술을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편견일 수 있으니, 의사를 통해 확인해보는 과정은 필수다.
EIU는 문화와 환경을 밴쿠버는 이 부분에서 지수 100, 만점 평가를 받았다. 밴쿠버는 종합 1∙2위 도시보다 이 분야에서 앞섰다. EIU는 이 분야를 9가지 요소로 세분화해 평가했다.
① 습도와 날씨, ② 여행자에게 기후가 미치는 불편 요소를 보면 밴쿠버는 단연 유리하다. BC주 관광청 기후 자랑을 보면 봄철은 12~15℃, 여름 평균 22℃로 30℃까지 오를 때도 종종 있다. 가을에는 6~12℃. 가장 추운 겨울, 1월에도 평균은 3~7℃다.
다만 10월초부터 4월 중순까지 밴쿠버는 비오는 날씨로 유명하다.또 연중 일주일 남짓한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다. 대체로 11월에 찾아온다. 북극권 한파가 발생하면 강추위와 때에 따라 눈보라도 만날 수 있다. 대체로 12월초~1월초 사이에 발생한다.
또 다른 평가 요소인 ③ 부정∙부패를 보면, 캐나다는 상당히 청정국가다. EIU평가 외에도 국제투명성기구(TI)가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를 보자. 지수가 100에 가까울 수록 부패가 적은 나라다. 캐나다 2016년 지수는 82로 아메리카 국가 중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로 TI는 평가했다. 참고로 한국은 지수 53으로 52위, 북한은 지수 12로 174위다.
④ 사회 또는 종교적 제한, ⑤ 규제 수준, ⑥ 문화 다양성, ⑦ 식품과 음료, ⑧ 상품과 서비스 요소에서 밴쿠버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수 많은 민족과 문화권이 모여사는 만큼 하나의 문화나 종교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가 없다. 즉 다문화 기조에 도전할 때, 캐나다인은 상당한 규제와 불이익을 경험할 수 있다. ‘다문화’는 또한 음식과 음료 문화를 다양하게 만들고, 자본주의와 결합해 각종 서비스와 상품을 공급하는 배경도 된다.
한국 문화도 캐나다의 "자랑스러운" 다문화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캐나다의 이러한 수용성은 다문화 사회 안정을 모색한 결과이지만, 현재 국가적 강점이 되고 있다. 사진은 8월 한국 국기원 시범단 BC주도 빅토리아 공연과 관련해 존 호건 BC주수상이 송판 격파를 시연하는 모습.
한편 캐나다 사회 규제는 대체로 공공 불이익이 발생한 이후에만 협의를 통해 도입한다. 규제를, 문제 발생 후 해법으로 활용한다. 이런 방식은 규제를 문제 발생 예방용으로 일방적으로 정하는 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
캐나다 보수는 대체로 규제해소 정책(red tape reduction)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단 안전 관련 규정이나 강력범죄 규제에는 진보∙보수 모두 엄격하다.
⑨스포츠 다양성 역시 북쪽의 산과 남쪽에 풍부한 호수와 강, 서쪽에 해안, 동쪽에 평야를 생각하면 사실상 밴쿠버에서 즐길 수 없는 스포츠는 상당히 드물다. 사회 체육이 발달돼 있어 지역 사회별로 팀과 경기장을 상당수 갖추고 있다. 또 프로시장 역시 아이스하키∙축구∙캐나다식 풋볼 등에서 큰 편이다. 야구와 농구도 팬은 있지만, 시장 규모가 작아 프로팀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농구는 NBA 밴쿠버 그리즐리스 운영 실패 경험이 있다.
EIU평가가 놓친 부분은 환경보호 문제다. 캐나다 환경 보호 관련 수치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좋은 편이여서 많은 캐나다인은 캐나다 정부나 사회가, 혹은 자신이 환경보호를 잘 하고 있다고 인힉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분리 수거 제도나 재활용 제도를 보면 미국 외 다른 나라보다 뒤떨어져 있다. 앞서 캐나다는 문제 발생 후에 해법으로 협의를 통해 규제를 도입한다고 했는데, 이런 방식은 환경 보호면에서는 단점이다. 정부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 중에 하나다. 참고: 캐나다 환경 정책 문제점, SFU 경제학 교과서 일부
기후변화 문제도 정치적 이권과 맞물려 실제적 대응은 계속 미루고 있다. 참고: 데이비드 스즈키 재단 기후변화 대응 촉구
EIU는 교육과 관련해 단 3가지 요소로만 평가했다. ① 사립 교육 제공여부 ②사립 교육의 질 ③공교육 지표다. 1~7위까지 도시가 교육에서는 지수 100으로 평가됐다. 즉 캐나다 도시 중에 밴쿠버∙토론토∙캘거리 교육을 높게 평가한 셈이다.
EIU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밴쿠버∙토론토∙캘거리는 캐나다 국내에서도 초중고교생 중 사립학교 학생 수가 가장 많은 3대 도시다. 참고: 초중고교생 공립∙사립 입학율, 프레이저연구소
영어권 초∙중∙고교 기준 대부분 유명 사립학교는 밴쿠버∙토론토에 밀집해 있고, 일부가 캘거리에 있다.
EIU가 놓쳤다기 보다는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사립학교 비용이다. 사립학교 1년 학비는 C$2만~3만이다. 유치원∙초등학생 때는 4000달러 정도 일 때도 있지만, 진학하면서 학비는 뛴다. 대체로 고학년생이 다니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는 C$4만 ~5만이 학비다. 추가로 교복이나 교과서비, 과외활동비, 학교 기부금 등이 따른다. 달리 표현하면 일반 가정은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쉽지 않다. 오히려 학비는 대학교에서 사립∙공립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진다. 캐나다 대학은 대부분 공립 아니면 운영 방식면에서 공립화한 사립이기 때문이다.
놀면서 배우는 공립학교... 밴쿠버 시내 한 공립학교 놀이 시간. 사진=BC주 교육부
많은 비용을 부담하면서 사립을 보내는 이유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기회 자체가 공립보다 사립에서 더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립학교에서는 학생 100명과 악기 20대가 있으면 배울 의지와 재능을 보인 20명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사립학교는 학생 100명에게 모두 기회를 제공한다. 초기에는 재능 발견에 유리한 점, 나중에는 학생 맞춤 교육 때문에 사립학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BC주 특유 문제로 공교육 예산 지원 제한이 이전 보수 정권까지 문제가 됐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보수 특성 상 교육 예산을 쉽사리 풀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진보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교육 예산 증액을 약속한 상태다. 단 투입 예산이 늘어난고 해서 교육 질이 금방 늘어나지는 않는 만큼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사회 시설에 대해 EIU는 밴쿠버를 지수 92.9로 평가했다. 앞서 1∙2위가 지수 100인 점에 비해 다소 낮은 평가다. 평가 요소는 ①도로망 수준 ②대중교통 수준 ③국제적 연결망 ④양질의 주택 여부 ⑤ 에너지 관리 ⑥ 수질 관리 ⑦ 통신 수준이다.
EIU평가는 다소 후한 편으로 보인다. 밴쿠버를 포함한 BC주는 현재 향후 10년간 교통망을 재정비해야 할 상황이다. 인구 증가에 비해 도로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로 브로드웨이 스카이트레인 확장 사업, 써리 경전철 도입 과제가 남아있다. 밴쿠버 국제공항과 고속도로를 통한 미국 국경 연결만 현재로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밴쿠버는 빠른 인구 증가에 비해 도로 등 교통망이 부족해 상습 정체 구간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 문제는 이미 5년 이상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지적돼 왔다. 사진=BC주 교통부
양질의 주택은 물론 존재하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현재 BC주정부가 해결해야할 과제 1순위로 주민 사이에 주거가 꼽히는데, 이는 캐나다에서 가장 값비싼 임대료와 주택가격이 그 배경이다. 에너지∙수질∙통신은 모두 현재 확장 또는 변경 단계에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메트로 밴쿠버 인구 증가(연간 3만5000명)와 함께 노후화로 인해 개선이 필요한 요소로 메트로밴쿠버 행정청이 매번 교통망 정비 다음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꼽고 있다. 참고: 메트로밴쿠버 행정청 개발 계획
살기좋은 도시 3위. 이런 뉴스는 밴쿠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소식일 수 있다. 살고 있는 사회가 국제 사회에 높은 평가를 받는 건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 현실적인 고려 없이 단순히 순위 만으로 상황을 오판하는 상황 역시 피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EIU 보고서를 다른 자료와 비교해가며 읽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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