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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윌리 퐁 이등병에게 빚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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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 퐁은 부산의 UN군 묘지에 영면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건 1952년 6월 23일, 그의 나이 스물 아홉때였다.

    그는 군인이었다. 캐나다 왕립 22연대 소속 이등병으로 한국에 파병됐다.

    그 이전에 그는 2차 대전에서 프랑스와 독일에서 캐나다 군인으로 싸웠다.

    1923년 3월 19일 당시 캐나다 사회로부터 멸시와 차별 대우를 받던 중국계 가정에서 퐁은 태어났다.

    뉴브런스윅 에드먼스턴이 그의 출생지다.

    “우리도 캐나다에 애국할 수 있다”

    2차 대전 발발 직전, 인두세와 이민 금지로 규모가 크지 않았던 캐나다 국내 중국계 커뮤니티에 군 자원입대 열풍이 불었다.

    1939년 유럽 전선에서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이 시작될 무렵, 중국계는 이미 주축국인 일본의 침략 야욕을 미리 읽고 있었다.

    이미 1937년 노구교 사건으로 2차 중일 전쟁이 발발한 상태에서 캐나다군도 결국 일본을 상대하게 될 거란 판단이었다.

    중국계 커뮤니티는 1885년 빅토리아와 1895년 밴쿠버에 설립한 중화회관(화교협회)을 중심으로 전쟁 채권 구매와 자원입대를 독려했으나, 캐나다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무시였다.

    지원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당시 중국계에게는 캐나다 국내에서 출생했어도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철저히 2등 국민 취급이었다.

    그러나 1942년 말레이 전투와 싱가포르 전투에서 캐나다군을 포함한 영국군이 일본에 대패해 무려 9만 명이 포로로 잡힌 후에야 정부의 태도가 바뀌었다.

    1943년부터 중국계의 입대를 받아, 훈련 후 파병을 개시했다. 퐁 역시 1943년 4월 16일 퀘벡에서 자원입대했다.
    퐁처럼 중국 커뮤니티에서 자원 입대한 인원은 600명이었다.

    당시 자원입대했던 로이 마 136특임대 하사는 전후 회고록에서 이렇게 지원 동기를 밝혔다.

    마는 “우리는 군 복무가, 캐나다 대중에게 우리의 캐나다 사회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라며 “우리 나라(캐나다)와 민주주의를 위해 왕의 제복(군복)을 입는데 망설임은 없었다”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종전 후에도 캐나다는 중국계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결국 중국계 참전용사를 중심으로 정부에 호소한 후에야, 1947년에 중국계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다.

    중국계 배우자와 국외 자녀 초청권도 주어졌지만, 그 선까지만이었고, 일반적인 중국인 이민은 허용하지 않았다.

    윌리 퐁 이등병
    윌리 퐁 이등병과 전우들. 자료원=캐나다보훈부

    “공산당 첩자 아니냐” 중국인을 향한 편견의 시선

    캐나다 사회의 중국계 불신은 뿌리 깊었다.

    1949년 10월 중국이 적화통일됐다.

    서방 사회에는 2차 대전 종전 후 이미 반공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운데, 중국이 공산화하자 캐나다 국내 중국계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더해졌다.

    이 상황에 발발한 6.25, 한국 전쟁은 캐나다를 위시한 서방 자본주의 민주 진영과 공산권의 첫 대결이었다.

    퐁과 같은 중국계는 다시금 캐나다 사회에 자신의 가치와 가치관을 증명해야 하는 묵언의 요구에 응했다.

    그리고 그의 전사는 한국의 민주주의 보전뿐만 아니라, 캐나다 사회에서 소수 인종의 보편적인 권리를 위한 디딤돌이 됐다.

    희생을 토대로 얻어낸 보편적 권리

    1950년대 후반 캐나다 이민법 내 차별 조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2차대전과 한국전에 참전했던 중국계는 퐁과 같은 전사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캐나다의 양심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 사회의 일원이다. 우리도 가장 중요한 생명을 캐나다 사회에 바쳤다”

    1962년에, 마침내 이민 사회를 포함한 캐나다 사회 전역에 큰 전환점이 마련됐다.

    이 해에 마침내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모두 배제된 새 이민법이 만들어졌다. 한국인의 이민도 이때부터 허용됐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캐나다에 사는 중국계 뿐만 아니라 한인도 퐁에게 빚이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 JoyVancouver 🍁 | 권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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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댓글들

    1. 캐나다가 마냥 이민자들에게 관대했던 나라도 아니고 나름 원주민 인권탄압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되돌아봅니다.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걸 기억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단 하나, “적화통일” 이라는 말은 냉전시대 반공 이념이 낳은 것이라 듣기 거북하네요. 사실대로 공산주의화, 혹은 사회주의화 되었다고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 독자분의 감수성과 개인적인 느낌은 존중합니다.
        적화통일이란 표현을 제가 의도한 당시 상황 서술 이상의, 거북한 의미로 들린다는 게 제게는 또 새로운 경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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