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마키 이(이위형) 씨는 캐나다 한인 1세 중에는 극히 드문 직업,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시트콤으로 유명한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 연극판의 ‘엄마’ 역이자, 그 이전에 자신이 직접 쓴 모노드라마의 주연이기도 하다.
이 배우는 인터뷰에서 배우가 되기 전의 과정, 배우로의 삶, 한국에서 삶을 얘기했다.
– 밴쿠버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신 건 언제부터 인가요?
“2011년 퍼시픽 시어터에서 어프렌티스(도제)로 활동하면서부터 입니다. 그 이전에는 리자이나에 있었어요. ”
– 원래 한국에서 연극을 하다가 캐나다에서 계속 활동하는 건가요?
“아니요. 2000년 관광비자로 캐나다에 왔다가, 유학생으로 전환했어요. 리자이나 대학교 ESL 과정을 들었고, 그때 학교에서는 ESL 과정 수료자는, 영어시험 없이 대학 과정으로 갈 수 있었어요. 제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글을 쓴 걸 보고, 교수님 소개로 연극 학과(Theatre Performance)에 들어가게 됐어요. ”
이 배우는 20대 중반에 캐나다행을 결정했다고 했다.
– 이민 오면 대부분은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찾는데, 남다른 경우인 거 같습니다.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겁은 나는데 마음은 끌리고, 도전해봐도 되겠냐고 교수님에게 물어보니 ‘한 학기 도전해 봐라. 네 길이 아니더라도 인생 배움이 있을 거다.’ 그래서 첫 강의 3시간을 떨면서, 교수님 양해를 구해서 녹음기 틀고 들었어요. 첫 수업에서 (연극에 대해) 첫사랑의 확인,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표도 희망도 없는 삶을 살다가, 여기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느꼈어요”
이 배우는 이어서 자신의 선택이 어떤 금전적 여유에서 나온 건 아니라는 걸 부연했다.
“유학생한테 주는 장학금이란 장학금은 다 쫓아다녔어요. 그러나, 2학년 2학기에 학비가 부족했고, 그래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이 모아서 학비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프랙티컬(실용) 학과에 가라는 충고도 많았지만, 연극 사랑에 빠져 계속 갔습니다.”
-졸업 후 연극 무대에 서는 일도 쉽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주어진 길은 없고, 아무도 기회를 안 주니, 내가 (희곡을) 써서 내가 무대에 올라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사이먼프레이저 대학교(SFU)에서 학문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 석사 과정을 하면서 희곡을 썼습니다. 교수들도 ‘너는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만큼, 네 스스로 수단을 찾아야 한다’라고 했지요”
고생을 각오했고, 고생을 했다.
“처음 공연에는 두 사람이 앉아있었어요. 친구들이었죠. 처음에는 아무런 관심도 못 받았고, 오디션도 거절을 당했습니다. 이민자 역이 맞겠다고 싶어서 지원하면, ‘우리는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이민자) 악센트를 연기하는 사람을 찾는다’라면서 원래 악센트가 있는 저는 거절 당했습니다. 이민 온 분들 모두 느끼겠지만, 굉장히 냉정하고 차가웠습니다.”
노력도 했다.
“저는 캐나다의 외국인이어서, 노력을 더 했습니다. 여기 배우라면 한 시간 연습할 거를 저는 4~5시간을 연습하지 않으면 못 따라가지요. 부탁해서 연습을 더하고, 또 연습 상대가 없으면 저 혼자라도 더 했습니다.”
차별도 겪었다.
“숨은 차별을 느꼈어요. 겉으로는 잘해주지만, ‘넌 필요 없어’라는 암묵적인 메시지… 입꼬리는 올라가 웃지만, 눈은 차가운 모습을 봤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점점 차별은 없어지는 듯합니다. 지난 2~3년 사이 오디션은 받아줍니다. 물론 오디션 기회를 주는 거와 발탁되는 건 큰 차이가 있긴 합니다.”
차별의 해소는 인터뷰 후 나눈 한담에 따르면, 많은 연기자의 노력과 캐나다 사회에 분 ‘정치적 올바름(PC)’의 바람이 기회 창출에 도움이 된 듯하다. 물론 ‘숨은 차별’ 이란 게 완전히 사라질 성격은 아니라는 전제는 있다. 유학생에서 이민자로 신분 전환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영주권을 받기까지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 선택에 후회 없이 만족하시나요?
“후회한 날도 많아요. 앞날을 전혀 보지 못하니까… 생활이 사랑만으로 되는 게 아닌데. 그래 봐야 되돌릴 수 없는 거고, 나나 다른 사람, 하나님에게 화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오늘에 충실하자 라고 살아요.”
이 배우는 한때 인생의 무게를 음주로 덜다가 의존증이 생겨 상당히 큰 어려움을 겪었다. 친구의 권유로 찾아간 교회에서 죽음으로 향하던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카르페 디엠이군요.
“젊을 때는 오늘을 사는 게 미래 때문이라면, 오늘은 오늘을 살아요.”
이 배우는 세 작품을 창작해 연극 무대에 올렸다. 모두 이민의 경험이 배경에 있다. 올해는 1월 17일부터 2월 1일까지 퍼시픽 시어터에서 ‘그램마(Gramma)’라는 작품을 공연한다. 이어 ‘김씨네 편의점’ 연극판의 엄마 역이 기다리고 있다.
“그램마는 리자이나에서 낯선 캐나다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와 같이 살던 하숙집 집주인 할머니 이야기에요. 전혀 다른 두 삶이 만나서 갈등의 과정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 생각해보니, 나에게 다른 의미의 가족이었구나 하는 그런 걸 표현했어요”
한국인과 캐나다인, 문화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란 질문이 이 배우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캐나다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걸 씁니다. 그러다 보면 관객 사이에 공감대가 있는 거 같아요. 한국분들은 연극에서 보너스를 받을 수 있을 거에요. 한국어나 한국적인 표현이 사용되는데, 한인 관객들은 다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요.”
– 혹시 캐나다에서 연극 배우의 길을 걷겠다는 한인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습니까?
“Follow your heart.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라) 그 결과를 받아들일 각오가 있을 때 뛰어들라고 하고 싶어요. 결과란 sink or swim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연극 배우가 아니어도 공감할 수 있는 대답이다.
많은 이민 1세가 ‘마음이 가는 대로’ 캐나다에 이민을 왔고,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로 이민 초기의 삶을 살았다.
후회할 수는 있지만, 후회보다는 오늘을 선택해 사는 이민자의 삶을 대변하는 연극배우, 마키 이씨를 만나 본 후 여운으로 공감이 남았다. | JoyVancouver ? | 권민수
참고 Gramma 공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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