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백과(33)] 나폴레옹 덕분에 일어난 캐나다-미국 전쟁

캐나다 상식 백과 33

나폴레옹의 의도하지 않은 영향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럽 지배 후, 영국을 넘보았지만 결국 트라팔가 해전(1805)에서 패배로 야망을 달성하지 못한다. 트라팔가 해전으로 재해권을 가진 영국은, 미국의 대유럽 수출을 방해해 미국인을 분개하게 만든다. 특히 유럽을 향하는 미국 상선의 선원을 영국 해군이 강제 납치하자, 미국은 제2의 독립전쟁 열기에 휩싸인다. 결국 미군은 1812년 6월 오대호 일대에서 캐나다를 향해 진격한다. 미국은 당시 캐나다를 쉽게 정복할 거로 여겼다. 그러나 테컴세(Tecumseh) 추장이 이끄는 쇼니(Shawnee) 원주민과 캐나다 자원 민병이 미군 침공에 저항한다. 원주민 참전 배경은 미국은 이전부터 원주민을 몰아내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초반 일진 일퇴의 전쟁

아이삭 브록 준장(Major-General Issac Brock)은 1812년 7월 테컴세와 미국령 포트 디트로이트를 점령했다. 그러나 미군이 대규모 병력으로 재침공해 벌어진 10월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 퀸스톤 하이츠 공방전에서 미군 침공을 막다가 전사한다.

이어 1813년 몬트리올 남부 샤토궤이(Châteauguay)에서는 찰스 드 샐래베리(Lieutenant-Colonel Charles de Salaberry) 중령이 대부분 불어계 캐나다인으로 구성된 병사 460명을 이끌고, 미군 4,000명의 침략을 막아낸다. 그러나 1813년 미군은 현재 토론토인 당시 욕(York)을 침공해 정부청사와 의사당을 불태운다. 여기에 대한 보복으로, 1814년 로버트 로스 준장(Major-General Robert Ross)은 노바스코샤에서 출정해, 미국 워싱턴 DC를 점령하고 백악관을 불태운다. 이후 로스 준장은 전사해, 핼리팩스에 묻힌다.

1814년 판도가 보이다

1814년에는 미국이 캐나다를 점령하지 못하리란 전망이 분명해졌다. 특히 나폴레옹이 1814년 엘바섬으로 유배되자, 영국은 북미 방어 능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핼리팩스와 퀘벡시티에 포대가 강화됐고, 핼리팩스와 켄싱튼의 포트헨리에는 해군 조선소가 들어섰다. 결국 영국과 미국은 헨트 조약으로 북쪽 국경을 확정한다.

1814년 12월 영국-미국 간에 벨기에 헨트에서 헨트조약(Treaty of Ghent)이 이뤄진다. 그림=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이후, 미국은 관심을 남쪽으로 돌리면서, 캐나다와 미국 간에 분쟁은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1812년 전쟁에 대해 캐나다인은 미국에 대한 승리를 자랑하지만, 미국인은 대캐나다 전쟁이 아니라, 대영제국 전체에 대한 항쟁으로 기억하고 있다. 캐나다는 다양한 캐나다인-영국계,프랑스계, 원주민이 소수 병력으로 미국의 침략을 방어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은 양측의 공방전이 육상과 해상에서 진행됐고, 일진 일퇴를 반복했다. 양측이 동의하는 바는 인명 손실이 많았던, 승자는 없는 무가치한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전쟁을 벌인 사상적 배경

John Gast, 1872
‘명백한 운명’을 상징한 그림, John Gast, 1872년작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 미국 대통령은 전쟁 당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란 걸 내세웠다. 미국이 북미 전역을 지배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는 주장으로, 원주민 학살과 영토 팽창주의의 배경이었다. 이런 사상은 메디슨 뿐만 아니라, 전대 대통령이자 그의 친구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도 지지했다. 미국의 확장주의는 1812년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태평양으로 서진과, 멕시코와 전쟁 등으로 계속 확대된다. | JoyVancouver 🍁 | 권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