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전 한국에 간 캐나다 군인들

-

캐나다 국립 문서보관소에는 68년 전인 1951년 한반도에 파견돼 한국을 지키기 위해 싸운 캐나다 참전용사들의 사진이 있다.
1950년 북한의 남한 침략으로 전쟁이 시작된 후, 캐나다군은 UN군의 일원으로 1953년 휴전까지 전선에서 싸웠다.
총 2만6,000명이 파병돼 516명이 전사했다. 최초 전사자는 신호수였던 윌리엄 존스 아키남으로 1950년 9월 1일 전사했다. 그의 나이는 34세 였다.
1950년 11월에 프린세스 패트리샤 경보병대 파견이 결정됐으며, 1951년 2월에 캐나다군은 최전방에 투입됐다.
UN군 파견 후 최초 전사자는 프린세스 패트리샤 경보병대 소속 찰스 밀턴 앨포드 이등병으로 1951년 9월 27일 전사 당시 그의 나이는 단 25세였다.
2차 대전 참전용사 출신으로 전후 필리스 일레인씨와 결혼해 신혼이었으나, 한국에 자원 파병했다가 세상을 떠났다.
캐나다군은 주로 중국 공산군과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51년 4월 24일과 25일 벌어진 가평 전투, 같은 해 11월 22일 벌어진 355고지 사수 작전 등에서 큰 활약을 했다.
앞서 캐나다 해군은 1950년 7월에 이미 군함 3척이 긴급 파견됐으며, 휴전까지 총 8척의 군함이 해안봉쇄, 침투 방어, 해안 포격 임무를 수행했다.
캐나다 공군도 1950년 7월부터 제426수송단을 투입해 전쟁 물자 보급 임무를 했고, 총 600회에 걸친 비행을 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이뤄진 이후에는 휴전선 감시 및 남한 재건 사업을 위해 활동했다. 캐나다 군인 7,000명이 휴전 후 평화지원 사업을 하다가 1957년에 철수했다.
11월 11일 리멤브런스데이(캐나다 현충일)를 맞아 이들의 사진을 찾아봤다.| JoyVancouver ? | 권민수

캐나다군 한국 사열
한국에 파병된 로킹햄(Rockingham) 준장이 록키 프렌티스 병장 외에 캐나다 군인의 사열을 받고 있다.

캐나다군 곡사포
1951년 11월 한국에서 왕립 22연대 곡사포 부대가 적진을 향해 포격을 준비하고 있다. 우측은 곡사포 소대 소속 대니얼 프리모, 레이먼드 로미오, 줄리엔 브로딘 이상 이등병이 포격 준비 후 대기하는 중이다. 이들은 모두 퀘벡 몬트리올 출신이다. 사진 =Paul E. Tomelin

캐나다 병사
1952년 10월 13일 촬영된, 캐나다 왕립연대 1군단 소속 존 르위스 이등병. 사진=Paul E. Tomelin

 
캐나다 해군함
한국 파견 해군함 조타실에서 활동하는 캐나다 해군.

 
CBC 종군기자
CBC 종군기자 노맨드 이브즈 기자(마이크 든 이)와 라디오 조정기사 노르만 맥베인이 왕립 22연대장 자크 덱스트라즈 소령과 한국 전황에 대해 1951년 10월 21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Paul E. Tomelin

 
캐나다 저격수
한국 파견 캐나다군 소속 2인조 저격병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캐나다 군인
왕립 22연대 2대대 소속 램버트 이등병이 1951년 5월 18일 참호에서 만화책을 보며 휴식하고 있다.(좌) 곡괭이를 든 캐나다 군인(우)

 
캐나다 공군
어니 글로버 캐나다 공군 중위는 한국전 동안 F-86전투기를 몰며 총 3대의 적기를 격추해, 캐나다군과 미군으로부터 공중전 수훈 십자장을 받았다. 1991년 별세했다.

 

Share this article

Recent posts

Google search engine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