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1919년 3.1운동, 캐나다인도 있었다

일제에 신음하던 한국에는 캐나다인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선교사로 의료나 교육 봉사활동 중이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한국인을 강경 진압했다.
이를 목격한 조선 내 캐나다인은 한국인을 치료하거나, 이 사실을 국외에 알리는 데 힘썼다.
이 중에서도 프랭크 스코필드는 3.1 운동에 직접 가담하는 패기를 보여줬다.
조이밴쿠버는 한인들이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또한 불의에 저항한 정신을 나누고자 한다.| JoyVancouver © | 권민수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부른 프랭크 스코필드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를 함께 부른 캐나다인은, 서른을 앞둔 29세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다.
한국 이름은 석호필로, 영국에서 태어나 1910년 온타리오 수의 칼리지를 졸업했다.
세브란스 의학교 교수겸 선교사로 1916년 한국에 갔다.
그는 시내에서 3.1 운동 사진을 촬영했다.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잡아가자, 경찰국장을 만나 석방을 요구하는 강단을 보였다.
1919년 4월 15일 수원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이 발생하자, 현장으로 가 사진을 촬영했다.
이를 북미의 언론에 비밀리 보내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다.
1970년 별세하기 전에, 1968년 독립운동 지원으로 독립장을 받았다.
1955년에 한국으로 가서 다시 수의학을 가르쳤다.
사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최초로 안장된 외국인이 됐다.

일제의 학살을 알린 스탠리 마틴과 아치볼드 바커

세인트존스 태생 스탠리 H. 마틴(Stanley H. Martin)은 중국 길림성 용정에서 제창병원을 세워 의료 선교 중이었다.
마틴은 토론토 출신, 아치볼드 H. 바커(Archibald H. Barker)와 함께 활동했다.
1919년 3월 13일 용정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일제의 탄압으로 부상자가 발생하자 마틴과 바커도 치료에 나섰다.
또한, 마틴은 병원과 건물에 독립운동가를 숨겨주고, 선전물 인쇄 장소도 제공했다.
1920년 10월에 둘은 경신참변(간도참변) 피해지역을 방문해, 일본군의 한국인 대량 학살을 조사했다.
이 사실을 캐나다 장로교단에 보고하고, 토론토 글로브지에 투고해, 일제의 학살을 세계에 알렸다.
둘은 사후, 1968년 독립운동 지원으로 독립장을 받았다.

세브란스병원을 세운 올리버 에비슨

올리버 에비슨은 영국에서 출생해, 캐나다에서 자랐다. 그는 33세에 한국 최초의 양의학 치료기관인 제중원 의사로 활동했다. 1904년에는 세브란스병원과 의학교장으로 활동했다.
주로 한국의 교육을 지원했다.
1942년부터 1943년 기독교인 친한회(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 재무로 활동하면서, 영연방 국가들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인정과 독립운동 지원을 촉구했다.
1956년 별세하기 전인 1952년 독립운동 지원으로 독립장을 포상받았다.

부상자를 치료한 로버트 그리어슨

핼리팩스 태생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은 함경북도 성진에서 제동병원과 교회를 세우고 활동 중이었다.
그는 1898년 30세 나이에 한국에 왔으며, 3.1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51세였다.
성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무력으로 눌렀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리어슨은 이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1965년 별세했고, 이어 1968년 한국 정부는 독립운동 지원으로 독립장 공훈을 인정했다.

한국 상황을 알린 제임스 게일

제임스 스카스 게일(James Scarth Gale)은 1888년 25세 나이에 한국 선교사 파송 이래, 대부분 기간을 한국에서 머물렀다.
1900년 연동교회 첫 담임목사로 1927년 은퇴할 때까지 활동했다.
연동교회는 3.1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교회다.
연동교회의 정재용 전도사는 3.1절에 탑골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일제 경찰에 의해 교회 신도 12명이 투옥됐다.
게일은 더코리아매거진이란 자신이 출판하던 영문잡지에 이 사실을 알렸다가 정간당했다.

의병활동 취재 후, 독립운동을 후원한 프레드릭 매켄지

프레드릭 매켄지(Frederick McKenzie)는 종군기자로 한국을 방문해, 의병활동을 취재하고 사진과 기록을 남겼다.
1920년에 한국친우회를 조직해 영국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1931년에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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