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백과(11) 캐나다 국가 범죄: 원주민 기숙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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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기숙학교(Aboriginal Residential School)는 한국인에게 식민지 지배의 악랄함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1876년부터 인디언법에 따라, 15만명이 139개 원주민기숙학교에 다녔다. 이중 일부는 학교에서 사망했다.
연방정부에 기숙학교 보건 상황 실태조사를 의뢰받아 활동한 닥터 피터 브라이스(Dr. Peter Bryce)의 기록집 국가 범죄에 대한 이야기: 1904년부터 1921년 사이 캐나다 인디언의 보건 상태 기록(The Story of a National Crime: Being a Record of the Health Conditions of the Indians of Canada from 1904 to 1921)이 유명하다. 정부는 조사 의뢰 후 그가 낸 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닥터 브라이스는 1922년 자비로 책을 내서 제도적인 만행을 공개한다.

20세기 초반, 원주민 기숙학교는 죽음의 학교

닥터 브라이스 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이다. 기숙 학교 학생 사망률은 무려 14%~24%, 원주민 보호구역 아동 사망률은 42%다. 원주민 보호구역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기숙 학교에서 죽을 병에 걸리면 보호구역으로 다시 보내졌기 때문이다. 빈약한 환기 시설과 보건시설은 주로 결핵 사망자를 늘렸다. 결핵은 당시에도 조기 발견해 약을 쓰면 죽지 않을 수 있는 병이었다. 1921년 해밀튼시 결핵환자 사망률은 10.6%였지만, 원주민 보호구역 결핵환자 사망률은 86.4%였다. 일부 학교에서는 죽은 학생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이름없는 무덤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1940년대부터 50년대에 이르러서 일부 학교를 폐교한다.

기독교계 잇달아 사과… 아직 상처는 다 치유되진 않았다

시민권 교재에서는 다뤄지지 않지만, 많은 기숙 학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개신교와 가톨릭교회에 의해 운영됐다. 이들 학교는 적극적으로 원주민 문화말살에 나섰는데, 그 결과는 깊은 신앙심이 아니었다. 화해와 진실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에 따르면 “고유 문화 상실로 인한 원주민 전체의 무기력감과 상실감”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아상실은 “높은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 정신병, 자살”로 많은 졸업생을 이끌었다.
결국 1986년 캐나다 연합교회가 교계 최초로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1993년에는 성공회장로교단이 각각 원주민 커뮤니티에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 회개한다는 발표를 한다.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원주민 학교 피해자에 대해 비애(expression of sorrow)를 표시했지만,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2017년 5월 저스틴 트루도 총리는 프란시스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생존자에 대한 교황청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교황과 만난 트루도 총리
교황을 만나 원주민 기숙학교 사과를 요청하는 트루도 총리. 사진=캐나다 총리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복음”으로 전달하기에 앞서 이들이 가진 크고 깊은 상처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무지는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목사나 수녀가 수시로 성추행하고, 기도를 제대로 못한다고 감금하거나 굶기고, 원주민 말을 한다고 해서 비누를 먹이는 환경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다. | JoyVancouver | 권민수

원주민 기숙학교 만행을 고발한 노래, 트래지컬리 힙스의 스트레인저… 원주민 아이가 1966년 원주민 기숙학교를 빠져나와 600㎞ 떨어진 가족을 찾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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