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금요일)

리치먼드 중국어 간판 논쟁, 벌금과 단속 대신 권고와 교육으로 해결하기로

리치먼드 시의회에는 해묵은 논쟁거리가 하나 있다. 시내 업체에 걸린 중국어만 사용한 간판을 정리하는 일이다.
이 논쟁은 이미 한 세대에 가깝게 이뤄졌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중국 홍콩반환을 앞두고 홍콩계 이민 열풍이 일어났다. 상당수 홍콩계가 풍수지리상 ‘용의 여의주’ 지형으로 본 리치먼드에 정착하면서, 일부는 상점에 한자 간판을 걸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해 일부 영어권과 타 문화권 주민은 어떤 업소인지 알 수 없다며 영어 간판을 달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같은 주장은 소수 언어 차별 논쟁으로 불거졌고, 이어 다수 역차별 논쟁으로 확산했다. 중국어 구사 손님만 배려하는 가게 주인의 배타적인 태도에,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낀다는 일부 영어권 감정은 처음에는 지역 신문에서 최근에는 온라인 토론방에서 폭발하고 있다.
그러나 쟁점이 된 중국어로만 된 간판 숫자는 실제로는 그 수가 많지 적다. 리치먼드시가 2014년 간판에 사용한 언어를 전수조사한 결과 중국어로만 된 간판은 전체 3.5%에 불과했다. 오랜 논란이 되면서 중국계도 업체 간판을 만들 때는 영어∙중국어를 함께 적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현재 2016년 인구조사 결과 리치먼드 시민 중 집에서 중국어를 자주 사용하는 시민 비율은 33%, 3명 중 1명에 달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중국어 간판 비율은 인구 비율보다 상당히 적은 편이다. 또 중국어 간판만 사용하면 해당 업체는 전체 인구 중 49%에 달하는 영어권 시민과 18%에 달하는 타 언어권 손님과 거리가 멀어지는 손해를 당연히 입기 마련이다.
이미 리치먼드시는 2014년 10월 “우선으로, 시공무원은 간판 주인과 협의를 통해 간판에 좀 더 영어 사용을 권장한다. (As a priority, staff consult with the sign owners to encourage more use of English language on their signs)”는 명령을 의결했다. 이 명령 후 간판 인허가 담당 공무원은 모든 간판에 대해 “영어가 최소 50%를 차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어 2015년 시청이 시행한 간판 1,500건 전수 조사에서 외국어로만 된 간판은 1% 미만으로 드러났다. 이어 2015년에는 어떤 언어든 과도한 광고 공간을 업체 전면에 쓰지 못하게 막는 ‘정돈 규정(de-cluttering rule)’ 도입했고, 2016년에는 버스정류장, 벤치 등에 설치된 거리 광고판에도 ‘최소 영어비율 50%’ 규정을 광고관리 업체에 장소 대여 계약 조건으로 제시했다.
개선은 이뤄지고 있지만, 캐나다 주류 언론이 이를 쟁점으로 다루면서, 실제로 더욱 쟁점이 되는 부분도 있다. 올해 리치먼드 시청 간판 인허가 부서로 쏟아진 ‘외국어 전용 간판’ 민원은 올해 상반기 308건에 달했다. 지난해 민원 178건을 웃돈 수치다. 민원 중 상당수는 부동산 중개사가 설치한 집 앞 간판과 관련해 들어오고 있다. 리치먼드시는 “고정 간판이 아닌 간이 간판(portable signs)은 간판 규정조례로 불허할 권한이 공무원에게 있어서, 이러한 민원이 들어오면 공무원이 현장에서 치우라고 지시하고, 조례 내용과 영어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간판 단속 업무는 관련 부서가 한 해 동안 처리하는 간판 인허가 건수인 평균 300건을 약간 초과한 상태다.
올해 6월 14일, 시의회는 간판과 관련해 새로운 시조례 의결해 발표했다. 간이간판 설치 규정, 창문에서 광고가 차지할 수 있는 비율, 설치 가능 장소 등이 새로 바뀌고 수수료와 관련 벌금을 올렸다. 또 전일제로 영어∙중국어 구사가 가능한 간판 검사원(sign inspector)을 고용해,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간판에 영어 사용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9월 11일에는 2014년에 등장했던 “시내 모든 간판 내 영어 최소 50% 비율” 규정을 명문화했다. 단 이 규정은 계속 권고안으로 남았으며, 단속과 벌금 대상은 아니다.
[시의회에 관련 공무원이 제출한 보고서](https://www.richmond.ca/agendafiles/Open_Council_6-26-2017.pdf) 대로 만일 외국어 전용 간판을 단속하면 캐나다 헌법인 자유와 관리헌장(Charter of Rights and Freedom) 상에 표현의 자유 보장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집단 소송 대상이 돼 만약 폐소하면 시의회는 소송 비용 외에도 막대한 피해 보상금을 물어 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중국어 간판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이런 점진적인 개선이 불만일 수도 있지만, 개선은 캐나다답게 서서히 대화와 이해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 ⓙⓞⓨ Vancou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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