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7일 (일요일)

타이완계 이민자, 유학생, 2세는 어떻게 BC주 장∙차관에 임명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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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이 되려고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겠지만, 장관에 도달할 만큼 캐나다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살았을까?

2020년 11월 26일 제 42대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총선의 결과를 토대로 주정부 내각을 구성하는 장관과 정무장관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기자가 받은 발표의 첫인상은 성별 균형을 안배한 점과 동시에 가시적 소수계 장관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특히 타이완계 여성 장∙차관 3인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 3인의 개인 공통점을 보면 크게 세 가지다. ▲지역 사회에 자원봉사를 꾸준히 했으며 ▲이민 사회의 지지를 받았고 ▲정치에서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지점, 즉 역할론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한인보다 인구면에서는 적은 타이완계는 이들의 정치 활동에 대해 당원가입, 정치 기부금 모금, 네트워크를 통한 후원과 지지 호소 등 실질적인 응원을 해왔다. | JoyVancouver © | 권민수

8세부터 자원 봉사, 앤 캉 고등교육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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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캉 고등교육부 장관. 사진=BC주정부

한인 사회 행사에도 자주 나타나 눈에 익은 앤 캉 고등교육, 기술 및 훈련부 장관은 2017년 버나비 디어 레이크 선거구에서 초선 후 이번이 주의원으로는 두 번째 당선이다.

초선 때는 대민행정부 장관과 시니어와 다문화 정무차관을 역임했다. 고등교육부는 BC주내 대학∙칼리지 및 성인 기술훈련 과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캉 장관을 소개하는 정부 자료에서 문구는 이렇다. “어릴 적 BC주로 이민 와서 버나비에서 30년을 살았다. 8세부터 지역사회 봉사자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캉 장관은 주의회에 뛰어들기 전에 이미 버나비에서 3선 시의원을 했다.

그 이전에는 UBC(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서 음악 학사, 초등 및 특수교육 학사, 학습장애와 관한 특수 교육 디플로마, 영재 특수 교육 석사 등을 받았다.
몬테소리 2급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즉 원래는 교육, 특히 육아 교육을 향해 인생을 설계해 갔으며, 실제로도 버나비에서 음악 교사로 활동하다 정치에 들어섰다.

타이완계인 앤 강의 한자명은 강안예(康安禮), 1977년 생으로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와 유치원 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6세 때 이민왔다.

성장하면서 타이완계의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아버지가 목사로 타이완계 이민가정의 어려움을 자주 상담했고, 자연스럽게 이런 문제에도 관심을 뒀다.

또한 영어, 중국 표준어, 대만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기자가 캉 장관을 처음 본 때는 타이완계가 한 뷔페 식당에 모여 자체적인 정치 지망생들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다년간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해온 젊은 타이완계를 이민 1세들이 후원하고 소개하는 자리로, 이 자리 이후에 앤 캉 장관은 2008년 11월 시의원에 출마해 31세에 처음 당선됐다.

유학생 출신 캐트리나 첸 보육정무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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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트리나 첸 보육정무 장관. 사진=BC주정부

캐트리나 첸(陳葦蓁∙ 진위진) 보육 정무 장관은 2017년 버나비-로히드 선거구에서 주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번이 2선이다.

1983년생인 첸 장관은 타이완 출신 17세 유학생으로 캐나다 생활을 2000년에 시작했다. 그전에 13세에도 캐나다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본격적으로 유학 온 계기는 타이완 언론과 인터뷰에서 대만의 매우 까다로운 대학 입시 시스템에 뛰어드는 대신하고 싶은 공부, 영어와 음악을 위해 캐나다를 택했다고 밝혔다.

다만 유학 초기의 생각했던 전공은 정치학으로 바뀌었다. SFU(사이먼프레이저 대학교)에서 정치학 전공, 역사학 부전공을 했다. UBC에서 이민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첸 장관 역시 정치 입문 전부터 중∙저소득층 권익 단체인 에이콘(ACORN)이나 타이완계 페스티벌 등에서 한 자원봉사 경력을 빼놓을 수 없다.

첸 장관은 과거 기자를 만나 타이완계 이민 가정이 겪는 어려움, 저임금 문제를 캐나다의 단체를 통해 해결하는 방향을 모색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타이완계 페스티벌에 자원봉사 활동은 뿌리를 지키는 지역 사회봉사를 한 셈이다.

정치에 본격적으로 연관된 건 결혼 후, 버나비 에드몬즈에 살게 되면서다. 에드몬즈 지역 연방하원의원인 피터 줄리앙 하원의원과 라지 초우한 BC주의원 선거 사무소에서 일한 게 정치 입문의 시작이었다.

정치에 나선건 2007년 버나비시 교육의원부터다. 그때부터 자신의 역할로 ‘젊은 엄마’를 항상 언급하고 있다. 자녀를 키우면서 어려운 점들, 예컨대 양질의 저렴한 어린이 집 이용 등에 대해 정치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주정부는 이런 역할론을 펼쳐온 유학생 출신 젊은 엄마 첸 장관에게 실제로 보육 정무 장관직을 주면서 지휘봉을 맡겼다.

엔지니어 출신 보윈 마 기반시설 정무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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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윈 마 기반시설 정무차관. 사진=BC주정부

보윈 마 기반시설 정무차관은 2020년 주총선이 2선이다. 마 장관은 2020년 10월 주총선에서 야당 의원의 성차별적 발언 때문에 화제가 됐다.

“다른 야당 소속 남성 의원에게 친절하게 대하려 했다”는 마 차관을, 미모를 활용해 현혹하는 여성으로 묘사한 한 야당 여성 의원의 발언이 언론에 폭로됐다.

마 차관은 그러나 그런 수준의 저열한 평가를 받을 사람은 아니다. 교통 공학과 관련해 객관적으로도 상당한 실력의 보유자다.

엔지니어링 학부 여성 학생회장 출신으로 2008년 토목공학 응용과학 석사로 UBC를 졸업했고, 이어 UBC경영대학원(소더스쿨)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BC 프로페셔널 엔지니어 및 지질학자 협회에 등록된 엔지니어로 밴쿠버 국제공항 터미널 확장 및 재개발 프로젝트의 관리자로 활동했다.

UBC 학창시절 마 차관이 축적한 실력과 인맥 네트워크는 마치 로켓의 연료처럼 분사돼 정치활동에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2017년 정치에 뛰어들면서 이런 엔지니어 경력을 활동해 메트로밴쿠버 대중교통을 총괄하는 트랜스링크나 교통∙주거 관련 정책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 차관은 타이완계 부모 밑에서 1985년에 온타리오에서 태어났다. 처음 일을 한 건 15세 때, 많은 밴쿠버 주민의 첫 직장으로 꼽히는 PNE로, 대학 학비 마련을 위해 일했다. 본인이 이런 첫 직장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메트로밴쿠버 주민에게는 지역 특유의, 함께사는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형성하는 경력이다.

열심히 일하는 의원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총선에서 BC녹색당의 앤드루 위버 전 당대표가 소속당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에 강한 목소리를 내는 부지런하고 신선한 인물로 재선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정치적으로 험지에 출마해 성공한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가 출마한 노스밴쿠버-론스데일은 보수계 성향으로, 진보계 BC신민주당 소속인 마 장관에게 유리하지 않다. 소위 진영 면에서는 불리하지만, 노스밴쿠버 특유의 정서 중 하나인 ‘환경 중시’ 코드와 맞기 때문에 재선에 성공한 거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선거구내 이란계와 원주민의 지지 또한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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