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백과(34)] 캐나다 수도는 원래 미국 침공을 막는 요새였다

캐나다 상식백과 34

웰링턴 공작, 캐나다 수도 기초를 놓았다

나폴레옹을 안다면, 웰링턴 공작을 모를 수 없다. 1815년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에게 최종 패배를 안긴 장군이 월링턴 공작이다.  월링턴 공작은 작위이고, 이름은 아서 웨즐리(Arthur Wellesley)다. 후일 영국 총리까지 오른다.
시민권 교재는 월링턴 공작이 “캐나다 수도가 된 바이타운 기초를 놓은 데 직접적 역할을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영웅이 선택한 도읍지 자리라고 하지만, 실제로 운하 건설과 수도로 정해지는 건 훨씬 뒤의 일이다. 리도 카날 공사는 1826년 시작돼 1832년에 끝났다. 리도 카날은 상업 거점 몬트리올- 영국해군 기지 킹스턴-방어 거점 바이타운을 연결하는 군용 목적에서 시작했다. 즉 미국침공을 막으려고, 각 포트(fort)를 해군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들고자 했다. 포트는 흔히 ‘요새’로 번역하지만, 북미에서는 군사 목적보다 일정 병력 주둔하에 교역 장소 또는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한 곳도 많다.

완공 후 리도 카날은 군사용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상업용도로 활용됐다. 바이타운이 행정 구역이 된건 1826년, 이름을 오타와로 바꾼 건 1855년, 수도가 된건 1857년이다.

리도 카날 스케이트
리도 카날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캐나다인. 사진=캐나다 전통문화부

‘신고자’로 유명한 여인, 로라 세코드

전쟁은 여성 영웅도 만든다. 개척민 아내이자 다섯 아이의 엄마인 로라 세코드(Laura Secord)는 1813년 19마일(30km)을 달려가 미국군 공격을 제임스 피츠기본 중위(Lieutenant James FitzGibbon)에게 알렸다. 미군이 오늘 걸 미리 안 영국군은 비버댐 전투(Battle of Beaver Dams)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세코드의 남편 제임스 세코드는 캐나다 민병대 였다. 1812년 전쟁 직후 부상으로 집에서 요양 중이었다. 미군은 이들이 사는 포트 조지를 1813년 점령했다. 당시 미군은 점령지 주민 집에 군인을 보내 재웠다. 이때 세코드는 비버댐 기습 계획을 듣게됐다. 부상당한 남편은 움직일 수 없었고, 결국 부인이 19마일(30km)를 달려가, 당시 영국군과 동맹인 모호크를 통해 기습을 알린다. 비버댐 전투에서 500여명 미군을 격파한 주력은 모호크 전사였다.  세코드 사연은 시민권 교재에 등장한다.

1812년 전쟁의 의미

1812년 미군 침공은 캐나다 안에 영국계, 프랑스계, 원주민이 하나로 뭉쳐 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기회를 만들었다. 다만 이 공동체 의식이 견고한 구체성을 갖지 못했다. 침략자를 물리치자는 공동 목표가 제시됐지만, 목적은 각각이었다.

원주민은 영국이나 캐나다를 위해 싸웠다기 보다는, 자신들 거주지를 지키려고 미국에 저항했다. 당시 미국은 원주민을 몰아내는 ‘서부 개척’을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영국군 산하에는 별도 캐나다 태생 불어계 부대로 편성된 볼티저(Voltigeurs)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인 로워캐나다 방어에 주력했다. 소수지만, 흑인도 참전했다. 리처드 피어포인트(Richard Pierpoint) 자원은 유명하다. 그러나 유명에 비해 그에 대한 영국군 대우는 박했다. 많은 흑인이 병사로 대우 받지 못했다.

전쟁 전이나 후에도 영국계는 프랑스계를 눌렀다. 원주민과 거리를 뒀다. 공동 목표에 따라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은 보여줬지만, 완전한 공동체 의식을 이루지는 못했다. 1814년 이후, 미국은 본격적으로 현재 미국 남부에서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기 시작한다.  | JoyVancouver 🍁  | 권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