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를 세우는데 공이 많은 동물: 비버

캐나다를 세우는데 일등 공신인 동물을 지목하자면 비버(beaver)다. 길이 1.3m, 최대 몸무게 35kg, 쥐과 동물 중 두 번째로 몸집이 큰 비버는 캐나다 거의 전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 이 비버 가죽은 캐나다 식민지 개척에 주요 재원이었다. 겨울철 따뜻하고 멋진 펠트 모자를 만드는데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600년대부터 금이 발견되는 1700년대 초반까지 비버는 캐나다 경제에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비버 가죽은 보통 원주민에게 사들였는데, 유럽에서 판매할 때는 구매 가격의 근 20배에 판매했다. 한때 비버는 캐나다의 기본 경제 단위이기도 했다. ‘벅(buck)’이란 화폐를 사용했는데, 이 화폐는 수컷 비버 모피 한 장과 같은 가치였다.

한 때 한 해동안 비버 가죽 약 10만장을 유럽에 수출했다. 그러나 남획은, 가죽 거래 전 약 600만마리로 추산됐던 비버를 19세기 중반에 거의 멸종 위기에 몰아넣었다. 비버가 멸종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자 재료로 19세기에 비단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1975년 캐나다 의회는 비버를 국가 상징(official symbol of Canada)으로 지정했다.

비버 모피로 만든 모자들. 자료원=Wikimedia

첫 금융기관은 몬트리올에 등장

캐나다 최초 금융기관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몬트리올 증권거래소(Montreal Stock Exchange)는 1832년 문 열었다. 몬트리올은 어퍼캐나다와 로워캐나다 사이에 상업 중심지였다. 특히 세인트로렌스강을 이용한 수로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20세기에 이르기 전 캐나다는 농업과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한 경제 구조였다. 유럽에 수출한 천연자원은 털가죽(fur) 외에도 생선과 목재가 있다. 이들 자원은 육로를 통해 호수와 강, 운하를 거쳐 몬트리올 또는 퀘벡시티에 모아 유럽으로 보냈다.

나무베는 사람들과 썰매. 기록화. 자료원=캐나다 국립 도서관/Peter Winkworth 소장품

캐나다 목재가 유럽에 수출된 배경에는 나폴레옹의 1806년 대륙봉쇄령이 있다 . 당시 영국은 유럽 북방 국가(발틱)로부터 대형 목재를 들여다가 배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륙봉쇄령으로 해당 국가에서 대형 목재를 들여오기 어려워 지자, 캐나다 국내에서 채집을 시작했다. 수백 척의 배가 목재를 실어 나르기 시작하면서 1817년에는 거래 대금을 결제하는 목적으로 몬트리올 은행(Bank of Montreal)이 창업했다.

캐나다 대표 어종이었던 대구

어업은 식민지 개척 초기부터 대서양 연안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다. 주로 잡은 어종은 대서양 참대구(Atlantic cod)다. 이 대구를 말려서 유럽으로 수출했다. 캐나다에 바이킹 등 유럽인이 상륙한 배경에도 대구가 있다. 대서양 대구는 한국 대구와 달리 몸통 최대 크기가 1.8m, 무게가 96kg에 달할 정도로 큰 개체가 있었다. 유럽에서 말린 대구는 가톨릭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유는 가톨릭 국가에서는 금육제(Abstinence)라 해서 특정 날 고기는 금지했지만, 생선류는 허용했기 때문이다.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며, 담백한 생선은 말린 대구였다. 또 카리브해 염장에서 소금을 가지고, 뉴펀들랜드에 들러 말린 대구를 싣고서는 유럽으로 가거나 그 반대로 가는 항로는 여러 사람을 부자로 만들었다. 후일 이 항로에는 아프리카의 노예 무역 루트까지 더해져 악명이 높아진다.

간유 싣는 상선
1857년 대서양 대구 간유를 싣는 상선. 자료원=캐나다 국립도서관

캐나다로서는 나라 건국에 공이 큰 대구는 20세기 초 남확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 결국 1992년 7월 캐나다 정부는 무제한 대구 어업 중단(Cod Moratorium)을 선언했다. 25년이 지난 현재도 개체가 회복되지 않아 어업 중단은 유지하고 있다. 당시 어부 3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뉴펀들랜드 지역 경제가 사실상 붕괴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 JoyVancouver 🍁 | 권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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