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상식백과 28

미국 독립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

뉴잉글랜드 13개주가 1775년 아메리카 혁명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 또는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난 후 1776년 미국을 구성했다. 혁명전쟁 명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미국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현대사에서 로열리스트(Royalist)라는 한 묶음으로 본다. 그들이 정말 영국 왕실에 충성했는지를 떠나, 사정은 매우 다양했다.

독일인과 스칸디나비아인, 일부 네덜란드인이 로열리스트에 속했다. 당시 이들의 상권과 신분을 영국이 보장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후국으로 구성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는 영국과 국제 연대를 취하면서 교역권을 보장받았다. 많은 독일인이 영국 용병으로 활동했다. 또한 계몽 군주가 있다고는 해도 엄연히 유럽은 왕정-귀족 시대로 왕당파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원주민 역시 앞서 살펴봤듯이 서부 원주민 지역으로 확장하려는 뉴잉글랜드, 이제 미국에 저항할 이유는 충분했다.

또 미국은 대다수가 흑인 노예주였지만, 영국은 이미 1772년 서머셋 판결(Somerset’s case)로 노예제를 불문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자유민과 노예로 구성된 약 3,000명 흑인 로열리스트도 캐나다에 귀순했다. 미국을 떠나온 3,000명 흑인 일부는 노바스코샤에 1792년 정착한다. 이들에게는 척박한 땅이 주어졌고, 그마저도 독립전쟁이 길어지며 백인 로열리스트가 늘어나자 질시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Freetown)을 개척한다. 자유를 보장받은 이로 구성된 영국 식민지였다.

종교도 중요한 문제였다

현대에 와서 많은 역사서가 비종교적 관점을 택해, 혁명전쟁과 종교 관계는 집중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일반인에게 종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독립을 주도한 미국인 대부분은 개신교, 극소수가 가톨릭이었다. 개신교는 가톨릭에 배타적이라 많은 가톨릭이 캐나다로 피난, 로열리스트에 속한 배경이 됐다. 또 영국에 본산을 두고 있는 교단은 거의 혁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성공회(Anglican)가 있다. 기독교에 속하지 않는 유대교(Jewish)나 전쟁 반대 교리가 있는 퀘이커교, 감리교(Methodist) 일부도 로열리스트로 분류됐다. 이들은 적극적 친영파였다기보다는, “싸워야할 때 싸우지 않는자는 우리편 아니다”라는 논리가 적용됐다.

당시 북미 개신교 내에서는 각성운동이 진행 중이었다. 개신교라고 한 묶음으로 보지만, 유럽에서는 특정 국가나 민족이 선호하는 교단이 각각 존재했다. 북미에서는 이를 타파하는 여러 시도가 18세기 중반에 나타났다. 북미 지역화와 형식주의 타파, 가끔 교리 해석의 차이가 등장했다. 이들 각성파가 혁명 주축이다.

다만 각성파가 속했던 교단 자체는 개혁과 보수로 나뉘어 갈등이 심했다. 대표적으로 장로교(Presbyterian), 침례교(Baptist)는 일부 로열리스트를 배출했지만, 상당 수는 혁명에 가담했다.

특히 1740년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계 장로교인은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많은 목사와 장로가 영국군과 교전 중 또는 학살로 죽었다. 이러한 역사 배경 때문에, 북미 개신교 일부는 다른 종교 또는 심지어 다른 개신교 교단도 타파 대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아, 비정상적으로 전투적인 교단이 많은 현대 국가가 동아시아에 하나 있다. 미국에서는 토마스 제퍼슨이 종교 과열이 장차 신생국 미국에 위험요소가 되리라고 보고, 종교 자유법 입법을 주도했다. | JoyVancouver 🍁 | 권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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