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백과(16) 캐나다 안 퀘벡의 특별한 지위

계속 잘려나간 지역 퀘벡

프랑스계는 언어와 문화 전통에 긍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북미 대륙을 놓고 전쟁을 벌였고, 프랑스는 1760년 전쟁에 패배해, 뉴프랑스란 이름을 접게 됐다. 이어 1763년 영국 왕실 칙령에 따라 퀘벡이 주로 등장했다. 캐나다사에서 널리 가르치지 않지만, 1775년 미국 독립전쟁 당시 퀘벡민 일부는 대륙군(미국 독립군) 산하 2개 캐네디언 연대(Canadian Regiment)에 가담했다. 이들은 미국 독립 후 퀘벡 독립도 목표로 했다. 실제로 몬트리올을 잠시 점령했지만, 1776년 영국군이 대규모 파병되면서 밀려났다. 일부는 미국 독립전쟁에 미국 원군으로 등장한 프랑스해군에 자원하기도 했다. 영국군은 퀘벡을 출정 기지로 삼았다.
독립 전쟁이 끝나자, 미국에서 영국에 충성한 왕당파, 로열리스트(Royalist)가 대거 북상했다. 이들은 레이크 온타리오 건너 당시 퀘벡주였던 지역에 정착했다. 이들의 유입은 1791년 당시 퀘벡을 어퍼캐나다(Upper Canada)현재 온타리오)와 로워캐나다(Lower Canada 현재 퀘벡)로 나누는 행정개편의 실마리가 된다.

비불어권 이민에 민감한 퀘벡, 역사적 이유 있다

퀘벡은 과거도 그랬지만, 지금도 정치적으로 진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보수적 자세, 즉 현상 인정은 결국 영국 지배를 수용하는 자세가 된다. 퀘벡민 입장에서는 불리한 보수보다는 진보가 유리했다. 퀘벡의 진보 지향은 현재 이중언어 정책, 다문화주의의 원형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퀘벡 정부는 소위 불어(언어) 정책과 퀘벡 문화보존 정책에는 때로는 극우같은 성향까지 보인다. 역사적 이유가 있다.
일단 로열리스트 유입으로 현재보다 훨씬 영역이 넓었던 퀘벡주는 어퍼와 로워 캐나다로 나뉘었다. 이후에도19세기까지 영국∙스코틀랜드∙아일랜드에서 퀘벡으로 이민은 계속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불어권 퀘벡민은, 영어권 중심 이민 정책에 의해 소수가 됐다. 퀘벡민이 소수가 됐을 때 영국 의회에서 등장한 법이 1841년 소위 통합법(Union Act)이다. 어퍼와 로워 캐나다를 하나의 ‘캐나다’주로 합병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법은 퀘벡민에게 상당히 불리했다. 관공서에서 불어 사용을 금했고, 불어 교육기관을 철폐했다. 프랑스식 민법도 폐지했다. 통합법은 퀘벡민에게 분명히 악법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법은 향후 캐나다 연방 탄생의 주춧돌이기도 했다. | JoyVancouver ? | 권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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