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상식백과 36

[상식백과(36)] 영국에서 온 개혁가, 캐나다를 다시 설계하다

개혁가, 그러나 차별로 평가절하된 로드 더럼

로드 더럼은 작위로 부르는 호칭이다. 본명은 존 조지 램버튼 더럼이다. 영국에서 자유당 전신인 휘그당 소속 하원의원이었고, 그중에서도 진보적이었다. 로드 더럼은 1838년 5월 로워 캐나다 총독으로 부임했다. 부임 4개월 만에 총독직은 사임하고, 1837년 발생한 반란에 대한 조사와 보고서 작성에 공을 들인다.
결국 1839년에 더럼 보고서(Durham Report)를 제출한다. 더럼 보고서는 캐나다 연방 창설의 기초를 마련한 보고서였다. 더럼은 1840년 7월 결핵으로 사망한다.
공식명칭이 ‘영국령 북미 정세 보고서(Report on the Affairs of British North America)’인 더럼 보고서는 그러나 불어권을 영어권에 동화시켜야 한다는 악명높은 주장 때문에 평가 절하 대상이다. 더럼은 불어권 동화를 위해 이전, 불어권에 보장했던 종교(가톨릭)와 불어 사용권리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권고는, 분리된 정체성을 지향하는, 불어계 캐나다인에 대해 몰이해 또는 명백한 무시에서 나왔다. 한편으로는 캐나다에 영국인 이민을 많이 보내, 인구를 늘리고, 운하 건설을 통한 개발 활성화도 주장했다.

더럼 보고서 대로 진행돼

역사는 지배자의 결정대로 흘렀다. 더럼 보고서 권고안대로 캐나다는 다시 설계됐다. 1840년 영국의회 결의에 따라 업퍼와 로워 캐나다는 다시 하나로 합쳐져, 캐나다주(Province of Canada)가 됐다. 이 과정에서 개혁가들이 대거 정치에 참여했다.

캐나다 건국의 아버지 중 3인
캐나다 건국의 아버지, 또는 야심가들… 좌로부터 에티엔-파샬 타치, 조르주-에티엔 카르티에, 존 A. 맥도널드. 사진=캐나다 의회 도서관

1841년 캐나다 주의회에 선출된 에티엔 파샬 타치( Sir Étienne-Paschal Taché)는 불어계 캐나다인이 영국 왕실에 충성하는 조건으로 연방국가 결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조르주-에티엔 카르티에(Sir George-Étienne Cartier)는 루이-조셉 파피노와 함께 1837년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이미 1838년에 사면을 받아, 변호사로 활동 중에 연방주의자로 변신했다. 둘은 캐나다 연방 건국의 아버지(Fathers of Confederation)으로 꼽힌다. 이 둘은 존 A. 맥도널드(John A. Macdonald)와 협력해 캐나다 연방 탄생에 노력했다. 맥도널드는 반란 당시 반혁명 민병대로 활동했다.

야심가들의 연대

타치나 카르티에를 성공한 정치인으로만 읽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타치는 열렬한 애국당원이었지만, 1837년 반란에 참여하지 않았다. 카르티에는 파피노와 함께 혁명 또는 반란 주동자였다. 그러나 카르티에는 단 1년 만에 완전한 방향 선회를 보인다.
둘은 1841년 캐나다주의회 주의원이 됐고, 심지어는 자신과 반대에서 싸운 진압군 출신인 맥더널드와 유대를 통해, 정치에서 출세 가도를 달린다.
이들 활동을 하나의 구도로 몰아 정리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타치는 연방 내 불어계 캐나다인의 지위를 고심해 활동한 내용이 남아있다. 현재 퀘벡의 구호인 ‘나는 잊지 않는다(Je me souviens)’를 쓴 사람도 타치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이들은 나중에 캐나다 연방을 결성하면서, 국토 개발과 관련한 막대한 수익을 챙긴 신흥 부르주아 정치꾼이다. | JoyVancouver ? | 권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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